강화 성공회교회

조회 수 5008 추천 수 0 2010.03.02 20:45:48

◇ 강화 성공회교회 ◇




* 1890년 성공회가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전파된 후 1893년 영국인 왕란도 신부가 강화 갑곶나루를 통해 들어왔다. 처음에는 갑곶진(갑곶나루) 근처 초가집을 구입하여 전도하기 시작하였다. 때를 같이하여 우리나라 최초의 해군사관학교 교관으로 온 영국교관의 집이 강화읍에 있었는데 해군사관학교가 폐쇄되면서 교관은 영국으로 가게 되었고 그 집을 성공회에서 사게 되어 교회가 강화읍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왕란도 신부의 후임으로 강화에 부임한 마크 트롤로프 신부는 1899년 가을 강화읍 강화내성에 배 모양의 터를 닦았다. 배 머리쪽은 서향으로 출입문을 두고 배 한가운데에 예배당, 배꼬리 부분에 사제관을 배치했다. 1900년 현재의 성공회 강화성당을 짓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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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공회 강화성당 입구 출입문

 

 * 성공회 강화 성당은 한국성공회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 건물로 정면에 서서 교회를 바라보면 100년이 넘는 세월을 지켜내고 있는 건물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게 잘 보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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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본 성당은 고요한(Charles Jone Corfe) 초대주교가 1900년에 축성한 건물로 성 베드로와 바우로 성당으로 명명되었다. 성당터는 세상을 구원하는 방주로서의 의미를 분명히 하기 위해 배의 형상을 따랐다.

 

 * 건물의 겉모습은 전통한옥을 본떠 지어졌는데, 정면 5개의 주련은 불교 사찰의 것과 흡사하게 보인다. 한자로 쓰여 있지만 내용은 성경문구를 따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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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시무종 선작형성 진주재(無始無終 先作形聲 眞主宰) 선인선의 율조증제 대권형(宣仁宣義 聿照拯濟 大權衡) 삼위일체천주 만유지진원(三位一體天主 萬有之眞原) 신화주류 유서물 동포지락(神化主流 庶物 同胞之樂) 복음선파 계중민 영세지방(福音宣播 啓衆民 永世之方)” 정면 기둥에 붙어있는 주련에 쓰여진 글귀다.

 

 

“처음과 나중이 없으나 모습과 소리를 먼저 지으셨으니 참 주재다. 어질고 옳음을 널리 펴서 무리를 구하니 큰 저울이다.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니 세상 만물의 참된 근원이시다. 하나님의 은혜가 흘러나와 만물을 기르니 동포의 기쁨이다. 복음을 널리 전해 백성을 깨우치니 영원히 사는 길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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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치와 내부구조는 서양식 바실리카 건축양식을 응용하여 조화의 아름다움과 토착정신을 드러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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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당 건물은 장방형(넓이 4칸, 길이 10칸) 2층 구조로 전체적인 건축양식은 한국전통양식을 따르고 있다.

 

* 기독교 복음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우리 전통 문화와 대화하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며 모습을 바꾸어가는 ‘토착화’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다.

 * 지붕 용마루 끝에 치마기와 대신 십자가를 올려놓은 것이 기독교 건물임을 나타내는 유일한 표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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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4년에는 교회 뒤편에 성 미가엘신학원을 설립, 성공회 성직자를 배출하기 시작했다. 같은 해 영국에서 종을 보내왔다. 이 종은 1945년 일제가 공출해갔고 1989년 성도들이 청동제 범종(높이 1.6m,무게 750㎏)을 마련했다.

 

* 이 성당 건축을 총 지휘하였던 트롤로프 신부는 경복궁 중수 때 참여했던 권위 있는 대목을 도편수로 고용하는 한편 성당 내부와 세례대, 그리고 축대의 중요부분과 벽돌 공사를 위해 인천에 직접 가서 중국인 석공을 고용하였고 기와는 강화흙으로 구웠다. 목재를 구하기 위해 서울의 뚝섬 목재상에 갔지만 20년 전 경복궁을 재건 할 때 한강 유역의 쓸만한 목재는 모두 벌채 되었으므로 신의주까지 가서 백두산 원시림에서 벌채한 적송을 구하여 강화도까지 뗏목으로 운반하는 열성으로 이 교회가 지어졌다.

 

* 성당 뜰에 있는 기념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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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6년 온수리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다 1906년 전염병으로 죽은 알마 수녀 기념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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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교회에서 사용하는 성찬 접시와 잔은 1900년부터 사용해오던 것이다. 교회 기(旗)는 보존을 위해 액자에 넣어 보관하고 있다. 2000년 11월 축성 100주년을 맞았고 정부는 2001년 1월4일 사적 424호로 지정했다. 서울 정동제일교회 문화재예배당에 이어 두 번째다.

 


* 성공회 강화성당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한옥교회 건물이기도 하다. 예배당 내부는 전형적인 바실리카 양식이다. 내부에 중층을 만들어 창문을 달고 자연채광을 하도록 했다. 북쪽에 제단을 두는 우리 습관과는 달리 서양식 내부 배치에 따라 동쪽을 바라보고 예배하게 했다. 200여명이 동시에 예배드릴 수 있을 정도로 크게 지었다. 지금도 매주 예배가 드려진다. 


* 교회 주소: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관청리 422

* 전     화: 032) 934-6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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