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 매봉교회

조회 수 7249 추천 수 0 2010.03.03 23:46:30

◇ 천안 매봉교회 ◇



* 이곳은 유관순열사가 태어난 곳이다. 열사는 1902년 12월 16일 충청남도 천안시 병천면 용두리에서 아버지 유중권의 5남매 중 둘째딸로 태어났으며 어머니는 이소제이다. 이화학당에 다이던 중 서울의 3.1 만세운동에 참여하였고 이후 고향으로 돌아와 1919년 4월 1일 3천여 군중이 참여한 호서지방 최대의 독립만세운동인 아우내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 유관순 열사가 이토록 큰일을 할 수 있었던 데에는 기독교신앙과 교회의 역할이 컸다. 유관순은 모태신앙을 가진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다. 유관순의 부모는 일찍이 기독교를 받아들였고, 그의 주변 친지들 역시 대부분이 기독교인이었다. 유관순의 작은아버지 유중무는 매봉교회 전도사로 사역했다.


* 이처럼 조국 독립에 대한 유관순의 의지에 강한 버팀목이 되어 주었던 것이 기독교 신앙이었다면, 그가 서울에서 아우내로 내려와 실제로 만세운동을 벌일 수 있었던 데에는 주변 교회와 목사, 그리고 교회 신도들의 목숨을 내건 도움이 결정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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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감리교 소속으로,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은은한 빛깔의 갈색 벽돌로 제법 멋스럽게 지어진 단아한 모습의 건물이다. 건물 정면 벽에는 3·1운동을 상징하는 철제조형물이 부착돼 있고, 교회 바로 옆에는 유관순이 태어난 생가가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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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세 되던 해인 1919년 3.1 운동이 일어나자, 열사는 이미 전부터 독립운동을 해오던 이화학당 선배들과 역학을 분담하여, 서명학, 김복순 등과 함께 기숙사 뒷담을 넘어 남대문 쪽으로 달려가 만세를 부르고, 다시 3월 5일에는 학생시위행렬에 끼여 만세를 불렀다. 이 운동으로 이화 학당 교사 박인덕, 신준려 등과 수십 명의 학생들이 검거, 투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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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관순은 이화학당 재학시절에는 가까운 정동교회에 다녔다. 이화학당 역시도 미션스쿨이다. 아버지는 늘 자녀들을 붙들고 ‘열심히 공부해 민족의 일꾼이 되라’고 기도했다고 한다. 유관순은 아우내 독립만세운동 직전 매봉산에 올라 3일 동안 밤낮으로 기도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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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시청 앞에서 만세를 부르는 군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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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동의 미군 영사관 앞을 지나가는

3.1만세 시위 군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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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월 31일 매봉산에서 열사의 봉화불이 오른 후, 1919년 4월 1일 병천면 아우내 장터에서 3000여 명의 군중들이 만세 시위를 전개하였는데, 열사는 시위 군중들에게 태극기를 나누어주는 등 독립만세를 주도하였다. 이 날의 시위에서 일제 헌병에 의해 열사의 부모를 비롯하여 김구응 등 19명이 사망하고 30여명이 부상하였으며, 열사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체포되었다.

 

 * 일본 헌병에게 체포되어 경성복심법원 최종 판결에서 3년형을 선고 받고 서대문형무소에 수감 중 끊임없는 옥중 만세시위 운동을 주도하다가 갖은 폭행과 고문에 못 이겨 1920년 9월 28일 순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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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관순 열사 초혼묘(招魂墓)

 

 

* 유관순열사가 1920년 9월 28일 오전 8시 20분 서울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 이화학당 주선으로 이태원 공동묘지에 안장되었으나 이후 이태원 공동묘지가 일제의 군용기지로 쓰이게 됨에 따라 미아리 공동묘지로 이장하는 가운데 열사의 유적은 흔적도 없이 망실되었다.

 초혼묘는 6각의 뿔형태로 각 면에는 열사의 기도문을 비롯하여 비문을 적혀 있다. 1989.10.12 건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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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화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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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모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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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봉교회 옛 사진

* 유관순이 살던 작은 초가집도, 매봉교회도, 용두리마을도 모두 불에 탔다. 그리고 일제탄압을 견디다 못한 매봉교회는 1922년 급기야 교회 문을 닫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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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 사진의 교회는 1967년 유관순 열사의 동기동창이며 당시 이화학교의 교장이시던 서명학 교장님께서 힘을 써 건립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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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관순 열사 생가

단촐한 ‘ㄱ’자 한옥 초가집이다. 원래의 가옥은 거사 당시 일제에 의해 유품 한 점 없이 전소됐으며, 지금 볼 수 있는 집은 1991년 정부에 의해 새롭게 복원된 것이다. 유관순의 생가는 사적 제203호로 지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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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부에서는 1962년 3월 1일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을 추서하고 열사의 애국정신을 영원히 기리기 위하여 1991년 옛 집터에 생가를 복원 정비하였다. 생가 옆에는 기념비와 열사가 다녔던 매봉교회가 있으며 매봉교회 지하에는 유관순열사전시관이 있다.

 

 * 매년 3·1절이면 기념예배를 드리고, 10월에는 유관순 추모예배를 올린다. 교회 안에는 조촐한 숙박시설도 준비돼 있어, 전국의 각 교회 학생부에서 수련회를 오기도 한다.

 


* 위  치: 충청남도 천안시 병천면 용두리 338-6

* 연락처: 041-564-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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