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양 웅동교회 ◇
* 광양지역에 기독교가 전파된 것은 명성황후를 살해하고 일본으로 도망치려던 일본인을 인천까지 쫓아가 죽이고 웅동 마을로 숨어든 한태원 씨를 잡기 위해 광주에서 온 한 관리가 도박을 일삼는 주민들을 보고 “광주에 가면 ‘야소교’가 새로 들어왔는데 이를 믿으면 도박을 끊을 수 있다”며 광주 양림동 책방에서 일하던 조상학 목사(1877∼1950·공산당에 순교함)를 소개한 데서 비롯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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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병준 장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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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갑내기(당시 40세)였던 박희원 서병준 장기용씨 등 3명이 광주에 가 1904년 조목사로부터 복음을 받아와 웅동마을 농가의 방 한 칸을 빌려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 이곳이 광양지역 첫 예배당인 웅동교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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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기용 장로 |
* 장기용 장로 가족 |
* 장기용 장로 묘지 앞에서 | |
* 이 교회는 성도가 늘어나자 1905년 3월 인근 신황리에 한옥 8칸 목조건물로 신황교회를 지어 이사했다. 이후 웅동교회는 2차례, 신황교회는 3차례 증·개축했다.
* 조상학 목사 가족은 신황리 교회 뒷편 깊은 산자락에 기거하며 광양 일대는 물론 순천 여수까지 복음을 전하다가 1949년 4월 1일에 덕양교회로 부임하고 그곳에서 1950년 9월 28일에 73세로 고 손양원 목사와 함께 수갑을 차고 순교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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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현식 목사 학창시절 |
* 웅동교회 출신 교역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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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2년 주일학교 후 | |
* 1979년 교회 사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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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양기독교선교100주년기념관 |
* 선교사들이 처음 복음을 전하는 다른 지역과 달리 웅동마을은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자생적으로 복음이 전해진 곳이다. |
* 주소: 광양시 진상면 황죽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