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 염산교회

조회 수 6615 추천 수 0 2010.03.05 00:11:58

◇ 영광 염산교회 ◇




* 1908년 당시 목포선교부에서 활동하던 유진 벨(한국명 배유지) 선교사가 서해안을 따라 올라가며 전도하다 이곳 포구에 상륙했고, 일진회에 대항하여 반일세력을 형성하던 문영국 정정옥 등이 복음을 듣고 야월리 아촌에다 훗날 이 지역 교회들의 모태가 된 염산리교회(현재 야월교회)를 세웠다.


* 염산교회는 1939년(당시 옥실리교회) 세워졌고, 1947년 현 봉남리 소재지로 옮기면서 염산교회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염산교회는 일제 강점기 문맹퇴치운동, 신사참배 거부 운동 등을 벌이기도 했다.


* 6.25 동란 대인 1950년 9월 29일 국군이 영광에 진군해 들어왔을 때 미처 퇴각하지 못한 공산주의자들이 10월 7일 교회당을 불 지르고, 교인들을 바닷가 수문통에 새끼줄로 묶고 큰 돌맹이를 달아서 수장시켰다. 이 때 전교인의 4분의 3인 77명이 순교했다. 이때에 염산교회의 담임목사인 김방호 목사와 7명의 가족이 모두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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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염산교회에는 이런 순교 장면이 있었다. 공산군은 담임이었던 김방호 목사와 7명의 가족을 한 줄로 세워놓고 몽둥이를 주면서 아들이 아버지를 치라고 협박하였다. 당연히 칠 수가 없는 일이다. 그러자 그들은 군화발로 차고 짓누르면서 가족들이 보는 눈앞에서 김목사를 창과 몽둥이로 때려죽이고 말았다. 이어서 김목사 사모를 그리고 또 다섯 아들과 8세와 5세 손자를 차례로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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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산당원들은 김삼순 집사의 집에서 몰래 예배를 드리던 허 상 장로를 붙잡아 뭇매질을 하고 설도 수문 위 제방으로 끌고 가서 목에 돌을 달아 바다에 던져 수장시켰다. 허 장로는 물에 빠져 죽으면서 “내 평생 소원 이것뿐 주의 일 하다가 이 세상 이별하는 날 주 앞에 가리라”고 찬송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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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사참배를 거부하다 예배당 종을 빼앗기는 박해를 당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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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7년 순교기념 사업을 추진하여 2,000여 평의 순교공원을 조성하였으며, 순교자료전시관과 순교교육을 개관하였고, 77인의 순교비를 완공하여 교회 앞에 세웠다.

 

* 염산교회 입구에 세워져 있는 77인 순교기념비의 뒷면에는 이름도 미처 올려지지 못한 이들이 올라있다. 최삼녀, 최이남… 최육녀 하는 식으로. 일가족이 모두 몰살되었기에 일점혈육하나 이 땅에 남겨두지 못했던 그들 77인. 그들은 죽어가면서도 “예수님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했다고 한다. 

 



* 주소: 전남 영광군 염산면 봉남리 191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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