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암 상월 그리스도의 교회

조회 수 4225 추천 수 0 2010.03.05 00:15:20

◇ 영암 상월 그리스도의 교회 ◇




* 1913년 7월 1일 세워진 상월 그리스도의 교회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있다. 35인의 순교자를 기념하는 순교비가 바로 그것이다. 35인 모두는 6·25 전쟁 당시 인민군들에 의해 순교를 당한 이들로서 상월교회에서 이들을 기념하고 성도들에게 모범이 되도록 하기 위해 순교 기념비를 세웠다.

 

 

PIC15E.jpg

* 35인 순교 기념비

 

* 6. 25 전쟁 당시 영암 상월리는 인민군들의 본거지로 사용되었다. 강진이 수복되고 그 외의 해남, 완도, 장흥 등 이 지역 일대가 군인들에게 수복되자 당시 지형이 험악했던 상월리 지역으로 인민군들이 모여 들었다. 상월리로 모여든 인민군들은 살생부 명단을 작성하여 지식인를 비롯한 경찰, 공직자, 기독인 등을 학살하기 시작한다.

 

* 1950년 11월 인민군의 조정에 의해 앞으로 나선 학살군(당시 상월교회 성도들은 인민군에 의해 순교를 당한 것이 아니라 인민군이 조정하는 상월 마을의 학살군에 의해 순교를 당했다)들은 한곳에 모인 이들을 외삼줄(삼나무 껍질을 꼬아 만든 줄로 당시 사용했던 줄 중 가장 강한 줄)로 성도들을 묶기 시작했다. 그리곤 이들을 학살 현장으로 끌고 갔다.

 

PIC15F.jpg

PIC160.jpg

 

 

PIC161.jpg

 

* 순교자들은 학살 현장으로 끌려가면서도 전혀 슬퍼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쁨의 찬송을 불렀다. 1950년 당시 상월교회에 시무했던 신덕철 전도사와 영암읍교회와 매월리교회 등에 복음을 전하고 다녔던 전도부인 나옥매 집사 등이 나서 학살장으로 끌려가는 중에도 계속해서 찬송을 부른 것이다. 또한 이들은 학살 현장에 도착해서도 학살군에게 30여분의 시간을 요청했다. 다름 아닌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30여 분간 예배를 드린 이들은 기쁜 마음으로 최후를 맞이했다.

 

 

PIC162.jpg

 

PIC163.jpg

 

* 여러 증인들을 토대로 명단을 확보하여 순교자의 이름을 새겨두었다. 그 중 ‘임태아’는 어머니의 뱃속에서 죽었다고 하여 상월교회에서 이름을 붙였다.

 

* 상월교회 순교자는 총 35명이다. 그런데 위의 순교자 명단 중 10명(목사 박석현, 사모 김귀남, 아들 박원택, 집사 나옥매, 문봉순, 오죽현, 성도 김민수, 현영필, 해남댁, 필남)은 천해교회 순교자 명단과 중복된다. 그런데 여기에는 사연이 있다. 천해교회는 6.25 전쟁 때의 전란이 지난 후 그 이전부터 천해에 교회의 개척을 꿈꾸며 노력해왔던 이홍길 장로 가정 중심으로 순교자 유족측 가족이 천해로 이사를 하여 교회를 설립하여 6.25 당시에는 교인들이 없었으나 상월교회에서 순교한 유족들이 있어서 순교자 교회가 되었다.

 

* 현재 상월교회에서는 35인의 순교자를 기념하기 위해 매년 11월 첫째 주 주일을 순교자 주일로 정하여 순교자 기념예배를 드리고 있다.

 


* 주소: 전남 영암군 학산면 상월리 423-7

List of Articles
제목 조회 수
강진 하멜기념관 imagefile 4969
강진읍교회 imagefile 3655
광양 웅동교회 imagefile 5107
광주 귀일원 imagefile 6526
광주 숭일고등학교 imagefile 7124
광주 양림 선교지 imagefile 6548
광주기독병원 imagefile 7874
목포 공생원 imagefile 6356
목포 양동제일교회 imagefile 8860
목포 정명여학교 imagefile 5680
목포중앙교회 imagefile 5903
무안 해제중앙교회 imagefile 4982
문준경 전도사와 증동리교회 imagefile 8986
소록도 imagefile 6577
순천 매산학교 imagefile 7067
순천 선교역사박물관 imagefile 7644
순천성서신학원 imagefile 5065
신안 진리교회 imagefile 5510
여수 덕양교회 imagefile 6541
여수 애양원과 손양원 목사 imagefile 10403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