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선교 유적지 - 노고단

조회 수 6229 추천 수 0 2010.03.05 00:19:56

◇ 지리산 선교 유적지 - 노고단 ◇



* 노고단은 한여름에도 날씨가 서늘하고 아름다운 경관이 사방에 펼쳐져 있어 예전부터 건강을 위해 찾는 사람이 많았었다. 이곳은 1920년대 한국 남부지방에서 활동하던 외국인 선교사들이 심신의 피로를 풀고 치료하는 안식처로 혹은 영적 재충전하는 장소 사용되었다.


* 1913년4월, 순천 매곡동에는 선교사 주택이 건설되고 있었다. 광주에서 살던 고라복선교사와 변요한 선교사는 하루라도 빨리 순천지방에 전도할 목적으로 미완성된 집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그런데 한 주일이 지나기도 전에 아이들에게 병이 나기 시작했다. 병은 급속도로 악화되어 치료도 제대로 해보지 못 한 체 두 자녀를 잃고 말았다. 이런 일이 일어난 후부터는 선교사들의 풍토병에 대한 공포는 삭으라들지 않았다. 특히 여름철에는 더욱 심했다. 선교사들은 영육간의 건강을 위해 지리산을 올라갔다.


* 풍토병에 시달리던 선교사에게는 쉬면서 치료를 받던 곳으로 사용되었다. 이곳에서 한글 성경번역과 주요 성경공부 교재의 번역이 이루어졌고 선교전략 계획을 수립하는 장소이기도 하였다. 풍토병 치료를 위해 지었던 수양관 건물은 변요한(J. F. Preston) 목사에 의해 건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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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양관은 노고단 주변으로 여러 채가 있었으나, 1950년 한국전쟁과 1968년 지리산 무장공비 토벌작전을 거치면서 대부분 사라졌다. 마지막으로 관리한 인휴(Huge M. Linton) 선교사가 떠난 후 현재는 반쪽만 남은 건물 흔적 1채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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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방 후 선교사들은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노고단 수양관의 건물 소유권을 재 인수받아 6.25전까지 사용하였습니다. 현재는 전쟁의 혼란 속에서 많은 건물들이 파괴되어 당시 교회건물의 벽 일부와 굴뚝 그리고 집터들만 남아 있습니다. 유진벨 목사의 외손자로 인천 상륙작전에 참전했던 휴 린튼 선교사와 조요셉 목사 등은 50년대 말까지 노고단 수양관 집터에 텐트를 치고 여름 수양회를 계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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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5 전쟁 시에는 빨치산의 거점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이곳 노고단 밑의 수양관들을 모두 태워 버렸고 건물잔해만 남아 있다.


* 주소: 전라남도 구례군 산동면과 토지면 사이 노고단 산장 근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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