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 정경옥 교수

조회 수 3974 추천 수 0 2010.03.05 00:24:18

◇ 진도 정경옥 교수 ◇




* 1903년 5월 전남 진도에서 태어난 정경옥은 〈독립신문〉등을 제작하여 배포하다 체포되어 6개월의 옥고를 치렀다. 감옥생활 중 그는 성서를 접하게 되었고, 성서를 통하여 깊은 신앙체험을 했으며, 감옥에서 만난 한 성도와 신앙적인 대화를 통하여 기독교로 개종하였다.

 

* 그는 일본에 유학 도쿄 아오야마학원(靑山學院)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던 중 1923년 9월, 관동대지진이 일어나 귀국, 1924년 감신대 영문과에 입학했다. 1928년 미국에 유학하여 개렛 신학교에서 공부했으며, 1931년 노스웨스턴 대학에서조직신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 후 모교의 요청으로 귀국, 그해 봄 학기부터 전임강사로 강의를 했으며, 1933년에는 수표교회에서 목회를 시작, 1937년에 목사안수를 받았다.


* 또한 감신대 교지인 〈신학세계〉의 주간을 맡으며, 1932년부터 5년간 60편에 달하는 신학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런데 명교수로 이름을 날리던 정 교수가 갑자기 낙향했는데, 그 이유는 자신도 모르게 젖어든 타성과 타협의 생활 습관에서 오는 ‘영적 위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2년 만에 다시 학교로 복귀했다. 1940년 일제에 의해 감신대가 폐교되고 만주로 쫓겨가 있다가 고향 진도로 내려왔을 때 ‘스파이’ 혐의로 수감됐다가(73일 혹은 8개월) 풀려난 후 새벽마다 청년들에게 신학을 가르쳤다. 그러다 맹장이 터져 복막염이 되어 회복되지 못하고 해방을 4개월 앞두고 사망했다.

 

PIC127.jpg 

* 정경옥 교수 생가

 

PIC128.jpg

PIC129.jpg  

 

PIC12A.jpg

* 묘지는 며느리가 사는 집 뒤쪽 야산에 있다.

 

 

PIC12B.jpg

 

PIC12C.jpg

 

PIC12D.jpg

* 정경옥 교수 맏며느리 이순명 할머니(진도읍 변두리 외진 곳 살고계심)

  

 

* 광주에서 새벽마다 가르쳤던 제자들에게 전한 특별한 유언 “복잡에서 단순으로!”는 1939년 감리교신학교 교수로 복귀한 후 강의실에서 신학생들에게 기회 있을 때마다 외친 교훈이었다.

 

 

* 『신학세계』 주간을 맡는 동안 60여 편의 신학논문을 발표했고, 감리교 신앙 고백서를 해설한 『기독교의 원리』(1935)를 집필했다. 그 후로도 예수의 생애를 그린 『그는 이렇게 살았다』(1938), 한국 최초의 조직신학 개론서인 『기독교 신학개론』(1939) 등을 저술했다. 1945년 4월 1일, 광복을 4개월여 앞두고 42세의 안타까운 나이로 소천했다. 서구의 진보적 신학을 국내에 소개했을 뿐 아니라 ‘향토화(토착화)’의 선봉에 선 1930년대 우리나라의 대표적 신학자였다.

 

 * 하지만 우리는 일제강점기 정경옥 교수의 친일행적으로 인하여 그에 대한 부정적 평가도 들을 수 있다.

 


* 생가 주소: 전남 진도읍 교동리 103번지

* 묘지: 며느리가 살고 있는 집은 진도읍 변두리 외진 곳이며, 묘지는 며느리가 사는 집 뒤쪽 야산에 있다.

List of Articles
제목 조회 수
강진 하멜기념관 imagefile 4970
강진읍교회 imagefile 3655
광양 웅동교회 imagefile 5108
광주 귀일원 imagefile 6526
광주 숭일고등학교 imagefile 7125
광주 양림 선교지 imagefile 6548
광주기독병원 imagefile 7875
목포 공생원 imagefile 6357
목포 양동제일교회 imagefile 8860
목포 정명여학교 imagefile 5680
목포중앙교회 imagefile 5903
무안 해제중앙교회 imagefile 4982
문준경 전도사와 증동리교회 imagefile 8986
소록도 imagefile 6577
순천 매산학교 imagefile 7069
순천 선교역사박물관 imagefile 7644
순천성서신학원 imagefile 5066
신안 진리교회 imagefile 5511
여수 덕양교회 imagefile 6541
여수 애양원과 손양원 목사 imagefile 10403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