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이거두리 참봉 묘소

조회 수 6219 추천 수 0 2010.03.08 23:53:15

◇ 전주 이거두리 참봉 묘소 ◇




* 전주 사람들에게 그는 이보한(일명 이성한)이란 본래 이름 대신 ‘이거두리’로 알려지게 되었다. 길거리에서 큰 목소리로, “거두리로다, 거두리로다.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 찬송을 부르며 전도했기 때문에 ‘거두리’란 별명이 붙은 것이다. 이보한은 아버지가 감찰, 큰아버지가 진사 벼슬을 한 전주 이씨 양반 집안 출신이었고 그 자신도 참봉 벼슬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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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거두리(이보한) 참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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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거두리 참봉 부친 이경호

(고종 황제 영정을 그린 화가가 그린 것)

 

 

 * 이보한은 1905년 3월 익산 목천포에 살며 감찰 벼슬을 하던 아버지가 부상을 입자 전주 북문안에 살고 있던 큰 아버지가 포사이드 선교사를 데려와 치료했고, 아버지를 폭행했던 강도들이 또다시 들이닥쳐 의사를 공격했는데 그 과정에서 가해자를 위해 기도하는 포사이드 모습을 보고 감동받아 믿게 되었다.

 

 * 이 때 포사이드 선교사는 중상을 입고 일본 요코하마로 후송된다. 포사이드의 치료를 받고 살아난 이보한의 아버지 이경호는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보답하는 뜻에서 교회를 나가기는 해야 하겠는데 양반 체면에 직접 교회 나갈 수는 없어 집안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지원자를 찾았다. “누가 내 대신 교회에 나가겠는가?”이 때 바로 이보한이 지원을 한다. 그는 자기 집에서 일어난 사간 와중에 보여준 포사이드의 행동에 깊은 감동을 받은 터였다. 그는 예수 믿은 지 1년 만에 전주교회의 대표적인 전도자가 되었다.

 

 

 * 서자 출신에다 어려서 열병을 앓다가 한쪽 눈을 잃은 그는 반골기질이 농후했고 예수를 믿은 후에도 제도권 교회 밖에서 파격적인 전도 행각을 보여 주었다. 그는 상갓집에 찾아가 노래해 주고 품삯으로 받은 돈으로 거지들을 먹였고 거지들을 끌고 부잣집만 골라 다니며 거둬 먹였다. 아버지가 소작인들 빚을 받아오라고 했더니 오히려 빚을 탕감해주고 돌아온 이야기, 나무를 팔지 못한 나무꾼들을 부잣집에 데리고 다니면서 팔아 준 이야기, 부잣집 아들과 거지의 옷을 바꿔 입힌 이야기, 거드름 피는 서울 양반들의 줄 뺨 돌린 이야기, 교인 변호사를 찾아가 천국에 달라 두라며 돈을 빌려다 거지들을 먹인 이야기 등 전라도 땅에서 그의 기행과 선행에 관한 이야기들이 풍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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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두리”란 별명에서 알 수 있듯이 전도하는 일에도 남다른 열정이 있어 한 번 ‘찍은’ 전도 대상은 놓치는 법이 없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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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민족의식도 강했다. 실제로 3․1운동 때 그는 서울까지 올라가 만세를 불렀다. 그는 거지들을 끌고 다니며 만세를 불렀다. 경찰이 잡아가면 유치장 여기저기 오줌을 누어대는 바람에 미친 사람 취급 받고 석방되었는데 그런 식으로 천안을 거쳐 전주까지 내려오면서 거지들을 끌고 다니며 만세를 불렀다 한다. 전주 만세 시위 때는 거지들을 동원해 독립 선언서와 태극기를 날랐고 3․1운동 후에는 거지· 기생들이 모은 독립운동 자금을 상해 임시정부에 보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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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스로 ‘거지대장’이 된 양반, 그러면서도 자비로운 선행과 투철한 민족의식으로 전주 사람들의 존경을 받던 이거두리가 1931년 8월 16일(음력) 별세하자, 전라도 거지 수 백 명이 몰려 와 상여를 꾸미고, 장례 절차를 주장하여 한국 초유의 ‘걸인장’(乞人葬)이 거행되었다.

 

* 걸인들이 돈을 추렴해서 세운 <李公 거두리 愛人碑>에는 다음과 같은 짧은 글이 새겨 있었다. “平生性質 溫厚且慈 見人飢寒 解衣給食”“한 평생 온후하고 자비로운 성품, 굶주리고 헐벗은 자를 보면 옷을 벗어주고 밥을 먹여 주었네.”

 

* 그는 이미 생전에 전주 이씨 집안에서 추방당한 처지라 유해는 색장리에 있던 종중 묘지에 들어갈 수 없어 죽림리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는데(1982년에야 ‘문중 교인’들의 주선으로 비로소 종중 묘지로 옮겨졌다.)

 


   

* 위  치: 전북 전주시 완산구 색장동(색장리) - 전주 시내를 벗어나 동남쪽으로 임실로 넘어가는 고개 길 오른쪽 옥녀봉 산자락에 위치한 전주 이씨 종중묘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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