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계산동성당

조회 수 7626 추천 수 0 2010.03.09 22:53:55

◇ 대구계산동성당 ◇



  1886년 로베트(Robert.A.P) 신부가 경상도 지역에 천주교를 전파하다가 1897년 현재의 계산동 성당 자리가 있는 자리에 있던 초가집은 임시 성당으로 사용하였다. 1899년 건축된 목조 십자형 기와집 성당이 1900년 화재로 불타버리자, 그 자리에 프랑스의 파리외방전교회(外邦傳敎會) 소속 로베트(한국명:金保祿) 신부가 설계하고 프랑스 ·중국 등지에서 건축기술자와 도목수 ·석공 등 30여 명을 초빙, 2년여 만인 1902년 완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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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적 제290호. 대구광역시 중구 계산동 소재. 1918년의 증축으로 완성을 본 이 건물은 도심의 평지에 건축된 연건평 3백 평 규모의 벽돌조 건물로, 전주 전동성당(殿洞聖堂)과 쌍벽을 이룬다.

  

 

 설계는 로베트 신부가 하고 중국인이 공사를 맡았다고 한다. 당시 대구에서는 처음 세워진 서양식 건물로, 입구에 두 개의 종각에 우뚝 솟아 ‘뾰족집’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성당건축은 고딕양식이 가미된 로마네스크 양식이며, 화강석 기단 위에 붉은 벽돌을 쌓고 검은 벽돌로 고딕적인 장식을 하였다.

 

 창문은 부벽(扶壁) 구조에 아치로 설계하였으며, 정면 현관과 측랑(側廊) 위쪽에 있는 꽃무늬창은 한국의 건축양식상 획기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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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남지방천주교를 토착화하는 데 중추적 역할을 하였으며, 1911년 조선교구로부터 분리, 대구대교구 주교좌 본당이 되었는데, 초대 주임신부에는 로베르를 임명하였다. 이 성당 건물에서 동남쪽 600여m 지점에 있는 관덕정(觀德亭) 순교 기념관에는 을해 ·정해 ·병인박해 때 교우들의 은신처였던 한티고개 ·신나무골 등 교우촌에서 붙잡혀 처형된 순교자들의 유물 30여 점 등 65점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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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교자 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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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척사비

 

대원군의 명에 의하여 천주교 및 서양과 왜(倭) 배척하면서 전국에 세웠던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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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형구

 

  일명 돌교수라고도 한다. 병인박해 때 대원군은 천주교인들을 너무 많이 학살하여 민심이 동요되자 정치적으로 불안을 느낀 나머지 “소리 없이 죽이는 기계”를 만들라는 명을 내린다. 이 때 등장한 것이 이 돌형구이다. 목에 밧줄을 걸고 돌구멍에 꿰어 잡아 당겨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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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구 지방에서 유일한 1900년대 성당 건축물로서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나고 있다.

 

 *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가 결혼하였던 장소이기도 하다.

 


주소 : 대구광역시 중구 계산동2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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