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록도

조회 수 6588 추천 수 0 2012.10.09 10:37:03

◇ 소록도 소개 ◇




* 한센병 환자를 위한 국립소록도병원이 들어서 있는 섬으로 유명하다. 전남 고흥반도의 끝자락인 녹동항에서 1㎞가 채 안되는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섬의 모양이 어린 사슴과 비슷하다고 하여 소록도라고 불리운다.


  섬의 면적은 4.42㎢에 불과하지만 깨끗한 자연환경과 해안절경, 역사적 기념물 등으로 인해 고흥군의 새로운 관광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고흥반도를 가로질러 녹동항 부둣가에 서면 600m 전방에 작은 사슴처럼 아름다운 섬 '소록도'가 한눈에 들어온다. 2009년도 개통된 소록도교는 국도 27호선을 이용하여 소록대교를 거쳐 소록도 주차장까지 이동 가능하며 소록도 주차장에서 부터는 도보 관람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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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윌슨(1880-1963) 선교사

1911년 광주나병원을 설립하는 등 구라사업에 헌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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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흥종(1880-1966) 목사

호는 오방(五放). 1932년 「나환자 근절협회」를 조직하고 광주에 한센병 환자 수용소를 설립하는 등 구라 운동에 헌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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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소록도병원의 역사는 1916년 일본 명치천황이 하사한 기금으로 설립된 소록도 자혜의원에서 시작되는데, 이 병원은 당시 조선 내의 유일한 한센병 전문의원이었다. 이곳의 중앙공원은 1936년 12월부터 3년 4개월 동안 연인원 6만여 명의 환자들이 강제 동원되어 19,834.8m²(6천평) 규모로 조성되었다. 지금도 공원안에 들어서면 환자들이 직접 가꾸어 놓은 갖가지 모양의 나무들과 함께 전체적으로 잘 정돈된 빼어난 조경이 보는 이의 감탄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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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교신(1901-1945)

월간 「성서조선」창간. 1933년부터 1940년까지 이 잡지를 통해 소록도 원생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들의 신앙간증. 서신 등을 게재하여 원생들에게 큰 위안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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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록도 갱생원 신사

 

1935년 소록도갱생원에 건립된 일본의 신사건축의 형식과 배치를 취하고 있는 건물로 목조건축양식을 모방하여 철근콘크리트와 벽돌로 건축되었다. 일제강점기 당시 환자들에게 신사참배를 강요하기 위하여 지은 건물로 우리 민족의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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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록도병원은 1916년 일본 총독부 영에 의해 개원되었다. 1945년 8월 15일 원생들은 자치권을 요구했고, 이를 거부하는 자들에 의해 협상대표자 84명이 처참하게 학살을 당했습니다. 참사 56년만인 지난 2001년 12월 8일에 화장, 매몰된 현장에서 유골발굴 작업을 실시하여 다수의 유골을 발굴하였다. 학살 당한 현장에 추모비를 세워 84명의 희생이 결코 헛되지 않음과 한센 가족에 대한 이해와 온전한 인권 회복을 소원하는 상징적인 기념비를 2002년 8월 22일에 건립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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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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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검시실 : 건립연도는 1935년이다. 검시실 또는 해부실로 불리는 이 건물은 앞부분의 방은 주로 사망환자의 검시를 위한 해부실로 사용되었으며, 뒤쪽의 방은 정관절제를 집행했던 곳이었다. 모든 사망환자의 본인 및 가족의 뜻과는 전혀 관계없이 이곳에서 사망원인에 대한 해부절차를 마친 뒤 간단한 장례식을 거쳐 섬 내 화장장에서 화장 후 남골당에 유골로 안치되었다.

  이러한 상황을 보고 소록도의 환자들은 “3번 죽는다”라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그 첫 번째는 한센병 발병이요, 두 번째는 죽은 후 시체 해부요, 세 번 째는 장례 후 화장이다. 정관 절제는 한센병 환자의 근절을 위해 1927년 일본의 한센병 연구 의학자에 의해 제기 되었는데, 병원 당국에서는 개원이래 남녀 환자 별거제를 실시해 오던 것을 1936년부터 정관절제를 할 경우에 부부 동거를 허용하였다. 그러나 정관절제는 감금실에 수용되었다가 출감하는 환자들에 대해서도 그 벌칙의 하나로 행해졌다. 이 건물은 2004년 2월 6일 문화재철 등록문화제 제 66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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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대

                       이 동

 

      그 옛날 나의 사춘기에 꿈꾸던

      사랑의 꿈은 깨어지고

      여기 나의 25세 젊음을

      파멸해 가는 수술대 위에서

      내 청춘을 통곡하며 누워 있노라

      장래 손자를 보겠다던 어머니의 모습

      내 수술대 위에서 가물거린다

      정관을 차단하는 차가운 메스가

      내 국부에 닿을 때

 

      모래알처럼 번성하라던

      신의 섭리를 역행하는 메스를 보고

      지하의 히포크라테스는

      오늘도 통곡한다.

 

* 일제하 제 4대 수호 원장시절 그의 명을 거역한 벌로 감금실에 갇혔다 풀려나면서 단종수술을 받은 환자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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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금실은 1935년 제정된 조선나예방령 제6조 및 동법 시행규칙 제8조의 규정에 따라 설치된 일제강점기 인권탄압의 상징물이다. 붉은 벽돌과 육중한 담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남과 북 두 건물이 회랑으로 연결된 H자 형태로 방은 철창이 설치되어 있고 각 실의 한쪽 마루바닥을 들어올리면 변기가 나오는 형무소와 유사한 구조로 되어 있다.

 

* 일제하 한센병 환자 징계검속권

일제는 1933년 소록도 섬 전체를 매수하여 전국의 한센병 환자를 수용할 계획을 가지고 대대적인 확장공사를 실시하였다. 1935년 「조선나예방령」을 근거로 전국 부랑 한센병 환자에 대한 강제모집을 실시하여 소록도로 송치하였다. 환자들을 소록도에 강제로 보낼 때에도 정당한 법적 절차는 물론 의사의 진단도 없었다. 더욱이 소록도 원장에게는 「조선총독부나요양소환자징계검속규정」에 따라 입원환자에 대한 막강한 징계검속권이 부여되어 있었다.

  그 내용을 보면 견책, 30일 이내의 근신, 7일 이내 주, 부식에 1/2 감식, 그리고 30일 이내의 감금을 시킬 수가 있었다. 특별히 상황이 중대하다고 판단된 경우에는 총독의 인가를 얻어 60일까지 감금을 연장 할 수 있었다. 따랏 환자들은 법에 보장된 재판을 받을 권리마저 박탈당한 채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병원당국의 철권통치에 따라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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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0년 한일 강제병합 이후 일본 총독부는 조선 통치의 근거가 되는 국가권력의 정당성을 확보하고자 한센병 환자들을 ‘반(反)사회인’으로 규정하고 이들을 집단 격리코자 한센병원 개설을 추진했다. 이에 후보지를 물색하던 중, 온화한 기후와 풍부한 물, 육지와의 인접성, 그리고 구릉이 있어 환자 지대와 직원 지대로 나누어 격리수용하기 용이한 ‘소록도’를 최적지로 판단하고 섬 주민들을 설득하여 1916년 도립 자혜의원(현 국립소록도병원)으로 개원하고 100여명의 환자를 강제 수용하였다.

 

  처음 5년간은 일본원장과 직원들이 원생들에게 일본식 복장과 음식, 신사참배까지 강요했으나, 제2대 하나이(花井) 원장은 달랐다. 그는 환자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일본식 생활양식을 폐지하고, 본가와의 통신이나 면회를 허용하였으며 3년제 보통학교를 설립하고 독서, 체육활동을 장려했다. 무엇보다 신앙의 자유를 주어 1922년 일본 성결교단 다나까 신사부로 목사가 총독부의 허가를 받아 선교함으로 구북리 1호사에서 예배드린 것이 소록도교회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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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나까 목사는 월1, 2회 오는 순회목사였기 때문에 통역관 박극순 씨를 교회지도자로 세워 주일과 수요예배를 주관케 하였다. 1923년에는 교인수가 120명에 달했고 남자40명, 여자4명이 구북리 서해안 백사장에서 다나까 목사에게 최초 세례를 받았다. 한편 병실에서 예배드리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하나이 원장은 일본 천조대신 신당을 예배처소로 허락하였는데, 1926년 다나까 목사가 부임하고, 1928년 예배당을 신축하였다(현 북성교회). 이어 같은 해 10월24일에는 남부예배당(현 남성교회)이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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