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병영교회

조회 수 5560 추천 수 0 2012.10.09 11:11:34

◇ 울산 병영교회 ◇




* 병영교회는 울산에 처음으로 세워진 개신교 교회이다. 그 때가 1895년이다. 공교롭게도 500년 이어오던 경상좌도 병마절도사영(병영)이 폐쇄되던 그 해다. 병영이 폐쇄되면서 군수지원 사업으로 삶을 영위하던 주민들의 삶이 혼란에 빠졌을 때다. 그해 병영 주민인 이희대씨는 자신의 집에 호주선교사들을 초청해 예배를 드리고 그 집을 예배당으로 헌납하면서 이 교회의 역사가 시작됐다. 단발령과 태양력 사용 등의 개혁조치와 함께 군사제도가 바뀌던 급변의 시기였다. 병영의 기치가 내려진 곳에 십자가가 세워진 것이다.

 

PIC158.jpg

 

 

  더욱이 병영성 밖 동천변에 있던 장대는 울산지역의 수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순교했던 곳이다. 그런 지역에 찬송가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 병영교회의 초기 지도자들은 호주선교사들이었다. 호주빅토리아 장로교 선교회가 부산에 본부를 두고 울산을 포함한 부산, 경남 지역 선교를 주도했기 때문이다. 아담슨 목사, 부라운 선교사, 왕길지(G. Engel) 목사가 순회목회를 했다. 왕길지 목사는 1902년 3월에 이 교회에서는 처음으로 어른 12명과 어린이 4명에게 세례를 베풀었다.

 

 선교사들은 조선사회의 봉건적 모순을 해소하고 사회적 악습을 철폐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이들은 성도들에게 청교도적 경건주의 신앙을 지도했다. 교회는 금주, 단연 운동을 선도했고 도박과 축첩을 금했다. 또 성도들이 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한글을 가르쳤다. 성도들은 애국계명운동을 전개하며 기독교인의 사회적 책임의식을 싹틔웠다. 교회는 점차 반봉건 반외세운동의 요람으로 성장했다.

 

  1917년 이르러 처음으로 조선인 목사가 부임했다. 훗날 목숨을 걸고 신사참배 반대운동을 이끈 이기선 목사가 1920년까지 이 교회에서 시무했다. 이 목사가 이 교회를 맡고 있던 1919년 병영에서도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이 교회 교인들은 앞 다퉈 만세운동에 참가했다. 병영의 삼일운동을 이끈 지도자 가운데 이문조, 이현우 두 사람이 병영교회 신자였다. 이들은 현장에서 일본 경찰에 체포돼 모진 고문을 당하며 대구감옥에서 2년간 옥고를 치렀다. 일경은 이 교회를 불온사상을 가진 집단으로 지목하고 집요한 탄압을 가했다. 하지만 그 어려움 가운데서도 지금의 제일교회와 송정교회를 분리 독립시켰고 호계교회를 세웠다. 이는 울산지역 초기 선교의 초석을 다지는 일이었다.

 

  교회가 병영로 병영초등학교 입구의 현재 위치에 자리 잡은 것은 1924년 새 예배당을 지으면서부터다. 당시에는 대지 240평에 건평이 30평인 기와집이었다. 지금의 예배당은 1992년 지하2층 지상 2층으로 신축하고 1994년 3층을 증축한 연건평 590평 규모의 건물이다. (울산제일일보 강귀일)

 



photohs

2012.10.17 05:46:19

울산 병영교회는 아무 자료도 남아있지 않아

교회 건물 사진만 찍어왔습니다.

혹시, 관계되시는 분께서 이글을 보신다면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사진이나 책이 있으신분께서 제가 볼 수 있도록 부탁드립니다.

List of Articles
제목 조회 수
거제 사등교회 imagefile 5565
대구 계산동성당 imagefile 7626
대구 동산의료원 imagefile 7923
대구 선열공원 imagefile 5215
대구 제일교회 imagefile 8043
마산 문창교회 imagefile 9746
봉화 척곡교회 imagefile 7243
부산 초량교회 imagefile 10745
부산진교회 imagefile 8821
부산진일신여학교 imagefile 9099
안동교회 imagefile 8089
영천 자천교회 imagefile 7617
울산 병영교회 imagefile [1] 5560
울진 행곡교회 imagefile 8302
의성 비봉교회 imagefile 4907
진해 웅천교회 imagefile 6547
통영 충무교회 imagefile 7193
포항 대송교회 imagefile 5933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