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영락교회 ◇
* 1945년 2월 한경직 목사를 중심하여 27명의 북한 피난민이 이 모여 베다니 전도교회로 첫 예배를
드린다.
* 1946년 청년회, 부인전도회, 농아부 창설, 경기노회에 가입하여 교회 이름을 영락교회로 개칭한다.
* 1947년 영락보린원 창설, 피난교우를 위하여 천막수용소 설치(574명 수용), 천막예배당 설치한다.
* 한경직 목사 | |
* 한경직 목사는 1902년 12월 29일 평남 평원군에서 태어났다. 그는 1922년 숭실대학에 입학하여 학문과 경건의 훈련을 쌓던 중 1924년 여름 황해도 구미포 해변에서 하나님의 소명을 받고 졸업 후 미국 엠포리아대학을 거쳐 프린스턴에서 유학하였다.
* 귀국 후 그는 신의주 제2교회, 해방 후에는 서울 영락교회를 세워 세계적인 교회로 성장시켰으며 고아 무의탁 노인 전쟁 미망인들을 위하여 영락보린원 영락경로원 다비다모자원을 설립하였고 영락중고등학교 영락여자신학원을 위시하여 대광학원 보성학원 장로회신학대학교 숭실대학 서울여자대학교 등 숱한 기독교 교육 기관을 통한 기독교교육에 이바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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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주년 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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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9년 3월 24일 본당 신축기공을 하고 지금의 본당에서 1950년 6월 4일 첫 예배를 드렸다. 그 해 7월 9일 공산군에 예배당을 징발당하고 승동교회 예배당을 빌려 예배드렸다. 지금의 본당은 1977년 6월 21일 십자형으로 증축 변형되었다. 2000년 11월부터 2001년 10월까지 본당의 지붕과 종탑, 내부 인테리어를 보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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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응락 장로 순교기념비 |
* 김응락 장로 |
* 김응락 장로 순교비문(1906-1950) 김응락 장로는 1950년 6.25 전쟁시 본 교회 안에서 순교했다. 그해 9월 하순 유엔군의 인천상륙으로 공산군이 교회를 떠났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김장로는 교회를 지키겠다는 일념하에 교회를 찾았다가 아직 남아있던 공산군에게 체포당했다. 많은 고문을 받으면서도 “나는 이 교회 장로다.”라고 태연히 말한 그는 9월 23일 교회 제단 앞에서 그가 온 정성을 바쳐 성도들과 함께 지은 이 교회의 첫 순교자가 되었다. 그때 그의 나이 45세였다. 순교한 장소에 1960년 기념비가 섰다. | |
* 1951년 부산영락교회 첫예배 드림(부산 새들원), 대구 영락교회 시작 성경구락부 개시, 부산 다비다 모자원 창설
* 1952년 제주영락교회 시작, 영락중학교, 영락경로원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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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4년 서울 다비다 모자원 창설, 예배당 내부 공사 완료와 동시에 헌당식 * 1973년 1월 2일 한경직 목사 원로목사 추대 및 박조준 목사 위임식. * 2000년 4월 9일 한경직 원로목사 소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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