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세군 본영

조회 수 5616 추천 수 0 2010.03.01 22:34:35

◇ 서울 구세군 본영 ◇




* 구세군의 해외선교는 1880년부터 시작되어 유럽 여러 나라와 캐나다, 미국 등에 전파되었고, 동양에는 1895년 처음으로 일본에 전파되었다.

* ‘군대 같은 교회’, 구세군(救世軍, Salvation Army)의 한국 선교는 구세군 창시자 윌리엄 부스의 지시로 시작되었다. 1907년 구세군 창립자인 윌리엄 부스 대장의 일본 순회 집회 때  참석했던 조선 유학생의 요청에 따라, 1908년 10월에 정령 허가두 사관(Colonel Hoggard, 영국인)에 의해 한국선교가 시작하게 되었다.  당시의 시대적 상황으로 나라를 잃은  민중들에게 제복과 군사적 용어를 사용하는 구세군은 상당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며 급속한 발전을 하게 되어, 1908년 11월 22일에 한국 구세군의 첫 번째 교회 (영문, Corps)인 서울 제일영(현 서대문 영문)이 당주동에 개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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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illiam Booth(구세군 창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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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가두(Colonel Hoggard, 영국인) 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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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세군 선교 초기 선교사들도 놀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 이유는 당시 시대상황에서 찾아볼 수 있다. 당시는 일제 침략에 저항하는 민족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던 시기였다. 이러한 때에 영국인들이 군복을 입고 들어와 ‘입대’를 권유하자 독립군에 지원하듯 몰려들었던 것이다. 당시 선교사들의 통역을 맡았던 한국인 통역들은 선교사들의 설교를 정확하게 통역할 수 없었을 뿐 아니라 아예 통역을 포기하고 자시 식으로 강연을 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선교사들은 한국인 통역들의 말을 조금씩 알게 되면서 통역을 내세운 전도 집회를 삼갔다. 그리고 1909년 7월 구세군 기관지 「구세신문」 창간호를 통해 교인들의 정치 참여를 강력하게 경고하였다. 이후 구세군에 몰려든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 1909년부터 문서선교로 구세공보가 발행되었으며,  절제호라는 특집호를 발행하여 금주, 금연의 절제운동의 시작하였습니다. 한편 이로써 무르익은 절제운동이 1921년부터  본격적으로 가두캠페인과  문서 선교로 활발하게 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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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사업은 1918년 한 독지가의 기부금으로 서대문구 충정로에 아동구제시설인 혜천원을 설립한 것을 시작으로 1926년에는 윤락여성을 위한 여자관과 교육사업인 학교를 설립하였습니다.  그리고 1924년부터 천재지변에 구호를 실시하는 긴급구호를 시작하는 등  선교에 못지않게 사회사업에도 활발한 활동을 펴서  구세군에 대한 관심과 좋은 호응을 갖게 하였습니다.

* 한편 1928년부터는 사회적으로 혼란하고 어려운 시기에 자선냄비운동이 시작되어 전국민적으로 사랑 심기운동을 펼쳐 좋은 이웃들을 많이 만들며 오늘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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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대 아래 나무로 깍아 만든 장의자 하나가 회중석을 바라보게 놓여 있는 것이 특이하다. 등받이 안쪽에 “속죄”, “화평”, “성결” 세 단어가 새겨져 있다. 의자처럼 생겼지만 앉는 곳이 아니다.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곳이다. 이것이 구세군 예배당에서만 볼 수 있는 ‘회개석’이다. 따라서 의자인줄 알고 엉덩이를 대고 앉았다가 큰 실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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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하에서의 선교는  일본의 2차 세계대전 참전으로 탄압이 시작되었고, 1941년 일본에 의해 [구세단]으로 명칭이 변경되고  해외 사관들은  모두 귀국조치 시키는 등 일본 구세군에 의해 운영되었습니다.

* 1943년 전쟁에 협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한국 구세군은 강제 폐쇄 조치되어 지하교회로 그 명맥을 이어오던 중, 해방 이후 1947년 새로운 사령관의 부임과 더불어 사업이 재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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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물 앞 도로는 왕궁을 훼손하면서 궁궐 가운데 낸 길이며, 길 건너편에 미국 대사관이 자리잡고 있다.

 

 

*1950년 발발한 한국전쟁으로 당시 구세군 사령관이던  로오드 부장은 피랍되었고,  진주영문 담임 사관이던 노영수 참령이 순교당하는 등 전국 각처에서 많은 피해를 당하는 수난이 계속되었습니다.

* 1908년부터 시작된 한국구세군은 역사의 흐름 속에서 대중과 함께 호흡 하는 교단으로 인식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으며,  그동안 20명의 사령관이  바뀌어 오는 동안  현재 220여개의 영문(교회)과 100,000여명의 교인, 지역사회복지 시설 220여개, 전문 사회사업시설 47개 등의 사회복지시설을 운영하는 등 선교와 사회사업에 활발한 활동을 보이고 있습니다.

 

* 2002년 3월 5일 구세군사관학교 건물이 서울시 기념물 20호로 지정되었다.

 



* 주소: 서울 중구 정동 1-23번지

* 전화: 02) 720-8250

* 홈페이지: www.salvationarmy.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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