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명동성당

조회 수 7913 추천 수 0 2010.03.01 22:46:53

◇ 서울 명동성당 ◇




* 명동대성당은 천주교 서울대교구 주교좌 성당이며 우리나라 최초의 본당이자 한국교회의 상징이다. 1784년 최초로 이곳 명례방에서 신앙 공동체가 성립되었다. 명례방 공동체는 한국 천주교회의 카타콤이고, ‘명동본당’은 한국 천주교회의 바티칸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고 하겠다. 이곳은 한국 교회 공동체가 처음으로 탄생한 곳이자 여러 순교자의 유해가 모셔진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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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80년대 이래 '성서활판소'가 설치되었고, 『경향잡지』, 『경향신문』 등이 간행되어 한국교회의 출판문화를 선도하게 되었다. 1892년 코스트 신부가 성당 설계에 착수하였고, 공사를 지휘하다가 1896년 선종했다. 그 후 후임으로 부임한 프와넬 신부가 본당 사목을 맡아 성당 건축을 마무리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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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98년 5월 29일 성신 강림 대축일에 조선 교구장 뮈텔 주교의 집전으로 역사적인 축성식을 가졌다. 기공 후 무려 12년 만에 완공된 명동 성당은 순수한 고딕 양식 건물로 그 문화적인 가치가 높이 평가되고 있다. 사적 제258호로 지정된 명동 성당은 준공된 후 1900년부터는 그 지하 묘역에 병인박해 당시 믿음을 지킨 순교자들의 유해를 안치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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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항기 설정된 명동 주교좌 본당은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단순히 이름만 주교좌 본당이 아니었다. 병인박해 이후 전국적으로 설립되는 모든 지역 본당의 모(母) 본당으로써 하나의 모델이었고, 모든 본당들의 중심이요 안내자로써의 역할을 충실히 하였다.

 

* 식민지시대 교구장과 주임신부의 정교분리원칙, 성속이원론적인 신앙 강조에 명동대성당은 일제하 한국인들이 당면하였던 반침략운동에 참여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명동대성당의 그러한 결정은 곧 바로 세례자 감소와 신자증가율 의 급격한 감소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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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4년 샬트로 성 바오로 수녀회로부터 전교수녀 2명을 맞아들여 사목에 박차를 가하는 도중 1945년 광복을 맞아 성당명을 종현대성당에서 명동대성당으로 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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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년대의 명동대성당은 민족이 겪는 수난과 고통을 함께 나누는 한편, 그러한 수난과 고통을 해방과 구원으로 연결시키기 위해 응분의 역할을 하였다. 이와 같은 명동대성당의 노력은 결과적으로 명동대성당의 사회적 위상을 높이는 한편, 명동대성당은 물론 한국교회의 성장과 발전을 촉진시킨 요인이 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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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0년대 명동대성당의 역사는 특별히 화려하지는 아니했다. 그러나 곧 닥쳐올 1970년대의 활동과 봉사를 위한 착실한 준비가 진행되고 있었다.

* 1970년대 인권의 추구(quest for human rights)와 정의의 요구(demand for justice)는 민주주의로의 이행에서뿐 아니라 민주주의의 공고화를 위해서도 여전히 중심 주제가 아닐 수 없다. 그 한가운데에 다시금 명동대성당이 있다. 명동성당은 1970, 80년대 근대현대사의 격동기에 한국사회의 인권신장 및 민주화의 성지로서의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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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동대성당은 1980년대 초반에는 광주항쟁 당시 나라의 안정과 평화를 기원하는 철야기도회의 장소였으며, 광주항쟁이 끝난 후에는 광주의 형제들을 위한 헌혈의 장소이기도 했다. 또한 1982년 부산미문화원 방화사건과 관련하여 최기식 신부가 구속되었을 때는 가톨릭의 주요 성직자와 평신도가 한데 모여 정부의 부당한 조치를 항의하는 규탄의 장소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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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들어 명동대성당의 사회적 역할은 한국사회의 시민사회화를 위한 역할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명동대성당은 한국사회의 시민사회화를 위한 열린 공간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이런 점에서 1990년대 명동대성당의 사회적 역할은 1970-1980년대 민주화를 위한 역할처럼 직접적이고 주도적이지는 않지만, 한국사회 변동에 있어서 여전히 중요한 순기능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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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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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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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초기의 벽돌조 성당이며 순수한 고딕양식 구조로 사적 제258호로 지정되어 있는 명동대성당은 그 건물 양식으로도 하나의 교회사적 의미를 가진다. 대성당의 평면은 라틴십자가형 삼랑식이고 본당의 높이는 23m, 종탑의 높이는 45m이며, 장식적 요소를 배제한 순수 고딕 양식을 본떴다.

 

 * 대성전 건물 외관이 장식적 요소를 배제한 순수 고딕 양식인 반면, 성당 내부에는 아치형 복도, 스테인드 글라스 등으로 공간의 미를 살렸다. 또한 곳곳의 제대, 성화, 성상 등 종교 예술품은 명동성당의 종교적, 미술적 가치를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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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하성당내부

 * 지하성당은 성당 제대 하부에 위치하여 미사 장소와 성해 안치실로 쓰이는 곳으로, 성당 건립 초기에는 아홉 개의 제대가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두 개만 남아있다. 현재 명동 지하성당에는 파리외방전교회 소속의 선교사로 기해박해(1839년) 때 새남터에서 순교하고 1984년 교회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성된 성 앵베르 범 주교(제2대 조선교구장)와 성 샤스탕 정 신부, 성 모방 나 신부의 오해 일부와 역시 기해박해 때 순교하고 1984년 시성된 성 김성우 안토니오, 성 최경환 프란치스코 등 다섯 분의 성인 유해가 모셔져 있다. 또한 1866년 병인박해 때 새남터에서 순교한 파리외방전교회의 푸르티에 신부 및 프티니콜라 신부의 유해와 1839년에 순교한 무명 순교자 두 분의 유해를 모셨다.

 


* 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명동2가 1번지

* 전화: 02) 774 - 1784

* 홈페이지: www.mdsd.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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