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양화진 선교사 묘역

조회 수 7192 추천 수 0 2010.03.01 23:42:00

◇ 서울 양화진 선교사 묘역 ◇



* 1890년 7월, 미국 북 장로회 선교사이며 고종의 시의였던 존 헤론이 양화진에 묻히면서 조성되기 시작한 묘지공원엔 총 555기(2004년 8월까지)의 무덤이 있다. 이중 167기가 선교사들이다.


* 한국감리교 최초 선교사 아펜젤러, 한국장로교 최초 선교사 언더우드, 여성교육의 선구자   스크랜턴, 옥중 전도를 처음으로 시작한 벙커 ,세브란스 초대 병원장 에비슨, 성서 번역의 공로자 게일, 교육과 선교에 공헌한 베어드, 농촌운동과 직업교육의 개척자 브로크만 등이 묻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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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91년 내한한 캐나다 출신의 의료선교사 홀. 그는 아들 셔우드 홀과 아내를 남기고 한국에 온지 3년 만에 병사했다. 그러나 아들 셔우드 홀은 선친의 유업을 이어 한국에서 결핵 퇴치 사업에 앞장섰다. 1932년 한국에서 최초로 결핵 퇴치를 위한 크리스마스실을 제작해 판매한 사람도 그였다. 그는 말년에 밴쿠버에서 숨졌으나 “나의 사랑, 한국에 나를 묻어다오”라는 유언에 따라 이곳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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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85년 4월5일에 인천 제물포항에 상륙한 언더우드와 아펜젤러는 한국 땅에 입을 맞추며 “우리는 부활절 아침에 이곳에 왔습니다. 그날 사망의 권세를 이기신 주께서 이 백성을 얽어맨 결박을 끊으사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자유와 빛을 주시옵소서.” 라고 기도했다. 그때의 기도문이 아펜젤러의 묘비에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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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헐버트 선교사 묘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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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더우드 일가 묘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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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화진의 옛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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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헐버트는 고종의 황실 영어선생님으로 한국에 왔다. 한국  학생들의 교과서를 만들고 처음으로 영어로 된 한국 역사를 집필, 전 세계에 알렸다. 그는 1901년 영문 잡지 코리아 리뷰를 창간하고, 1903년 10월 18일에는 YMCA 초대 회장이 되었다. 1905년 을사보호조약으로 한국이 외교권과 재정권이 박탈되자, 같은 해 10월 고종의 밀사로 미국 대통령 루즈벨트에게 친서를 전달하는 사명과, 1907년 이준, 이상설, 이위종 등과 함께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밀사로 파견되었다. 그는 언더우드 부재시 새문안교회와 서교동교회에서 설교를 담당하기도 하였다. 일본정부의 비난을 받아 1907년 5월 본국에 소환되어 한국을 떠났다.

 

* 헐버트 박사는 은퇴하여 미국 매사추세츠에서 머물다가 8.15 해방 후 1948년에 이승만 박사의 국빈 초청으로 84세의 고령으로 왔다가 1949년 8월 5일 서울 위생병원에서 별세하여 8월 11일 국장으로 장례하였다.

* 이 묘비는 본디 1949년 8월 11일 영결식에 제막된 것으로서 이승만 대통령께서 묘비명을 쓰기로 예정되어 있었으나 건국 초기의 어려움으로 새겨 넣지 못한 채 50년 동안 공백으로 남아 있던 자리에 그분의 50주기를 맞이하여 김대중 대통령의 휘호를 받아 <헐버트의 묘> 라는 묘비명을 새겨 넣는다고 한다. 그의 묘비명은 “웨스트민스터 사원보다 한국에 묻히겠노라.”라고 쓰여 있다.

 

* 양화진엔 아직도 이름 없는 묘지들이 많다. 누가 알려주지 않으면 묘지인지 땅인지 구분하기 힘들다. 오랜 세월 방치되어온 묘지공원 가운데는 비바람에 씻겨 비석의 글을 알아보기 힘든 것도 있다. 6·25전쟁의 격전지였던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총탄이 훑고 가 비문을 제대로 읽을 수 없는 경우도 더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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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교의 꽃을 피우지도 못하고 풍토병과 사고로 목숨을 잃은 이들도 있다. “나에게 천의 생명이 주어진다 해도 그 모두를 한국에 바치리라”는 묘비명을 남긴 루비 캔드릭. 그녀가 한국에 머무른 기간은 1년이 채 못 됐다. 황해도 개성에서 여학교 교사로 봉사하다.

  급성맹장염으로 1908년 8월15일 25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비문은 그가 생존시 미국 남 감리회 소속 텍사스 엡윗 청년회에 보낸 편지에 있는 내용이다. 당시 편지가 배달됐을 때 청년회는 연합회를 개최하고 있었고 다음날 그녀의 별세 소식이 전해졌다. 그녀의 편지는 대회 참석자 중 20명을 해외선교사로 결단케 만들었다.

 



* 주소: 서울특별시 마포구 합정동 144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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