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오산학교

조회 수 7625 추천 수 0 2010.03.02 00:26:37

◇ 서울 오산학교 ◇



* 남강 이승훈 선생이 평양 모란봉에 있는 쾌재정에서 청년애국자 안창호의 연설을 듣고 깨우침을 얻어 민중사상, 민족정신, 기독교정신을 교육이념으로 1907년 12월 24일 평안북도 정주군 갈산면 익성동에 오산학교를 설립하였다. 이 때 학생은 단 일곱 명이었다. 고당 조만식이 오산학교에 와서 교장으로 취임하여(1915년) 학교의 기틀을 닦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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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주년 기념탑

 * 나라와 겨레를 위해 일생을 바친 오산의 졸업생으로는 3·1운동 때 48인 중의 한 사람으로 활약한 독립 운동가 김도태(金道泰·1회)와 김지환(金智煥·.2회), 도쿄 2·8 독립 선언의 주역인 언론인 서춘(徐椿·3회), 독립운동에 일생을 바치고 독립 선언서를 영역(英譯)하여 세계에 알린 신우철(申禹澈·4회), 천재 시인 소월 을 기른 단역문학의 비조 안서 김 억(岸曙金億·4회), 초창기 서양 의학계의 태두로서 백병원을 설립한 백인제(白鱗濟·6회), 신사 참배에 대한 항거에 앞장서 순교한 한국 기독교의 양심 주기철(朱基徹·7회), 남강 사후 오산의 기둥이자 재건 오산의 주역 동광 주기용(東光朱基瑢·7회), 독립운동가로서 한국 의용군 사령관, 군인으로서 육사 교장, 정치인으로서 신민당 당수를 역임한 김홍일(金弘壹·9회), 한국 기독교의 기둥으로서 영락교회를 창설한 한경직(韓景職·10회), 조선일보 주필과 회장을 역임하고 등산을 스포츠화한 언론인 홍종인(洪鐘仁·11회), 우리 나라의 대표적 서정시 진달래꽃'을 지은 민족 시인 소월 김정식(素月金廷湜·12회), 현대의 대표적 사상가이자 민주, 민권 운동의 대표적 양심 함석헌(13회), 토속 서정 시인 백석(白石,18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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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5 전쟁 때 피란 온 많은 교사와 동창, 학생들에 의해 부산에서 오산학교 재건(1953년) 후 1954년 서울로 이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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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립자 남강 이승훈 선생상

 * 오산학교는 학교의 기둥인 설립자 이승훈이 신흥 무관 학교 사건, 105인 사건, 3·1운동으로 인해 한 번의 유배와 세 번의 옥살이로 전후 9년의 옥고를 겪는 아픔에도 굴하지 않고, 1919년 3월의 강제 폐교와 두 번의 화재에도 좌절하지 않고 다시 일어난 은근과 끈기의 상징적 학교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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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당 조만식 선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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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당 조만식 선생의 말씀

 

* 고당 조만식 선생은 1913년 오산학교에 부임하여 이듬해 32세로 교장이 되었고, 또한 학생들을 가르쳤다. 선생은 민족주의와 물산장려운동을 펴시고, 일제가 사회 저명인사들에게 한국인 대학생들을 자신들의 전쟁에 강제 동원하는 권유 강연을 거절하였다. 조만식 선생은 높은 학식, 두터운 신앙, 온 인격으로 전인교육을 하신 오산의 스승이요, 민족의 스승이다.

 

 

* 고당이 교장으로 계시던 시절에 학생 중에 주기철이란 이름의 총명한 학생이 있었다. 후에 고당이 평양으로 나가 물산장려운동을 이끌며 산정현교회의 장로로 섬기는 때에 주기철 목사가 담임 목사로 부임케 되었다. 한국교회의 교회사를 빛낸 순교자 주기철 목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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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석헌 선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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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광 주기용 선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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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호 김기홍 선생상

 

* 교사진은 1918년 무오(戊午)독립 선언의 주인공이며 민족을 위하여 온몸을 불사른 정열적인 민족애의 소유자 시당 여준(是堂呂準), 과학적 두뇌의 소유 자이며 씨알사상과 독실한 기독 신앙심을 퍼뜨리고 사상가 함석헌(咸錫憲)을 길러낸 다석 유영모(多夕柳永模), 교가, 창립기념가, 졸업식가, 동문회가, 오산 경가(五山景歌) 등을 짓고 초창기의 학교 교무 행정의 체계를 세운 춘원 이광수(春園李光洙), 대한매일신보의 주필이자 민족 사학자인 단재 신채호(丹齋申采浩), 소설 '표본실의 청개구리'의 염상섭(廉尙燮) 등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들은 용솟음치는 온갖 정성을 쏟아 학생들을 가르쳐 민족의 힘을 키우는 구국 인재를 양성하는 데 진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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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월시비

 * 춘원 이광수가 약관 19세의 나이로 교사로 부임하여 민족주의 정신을 고취시키고 문학의 바람을 일으켜, 춘원 이광수 - 안서 김억 - 소월 김정식으로 이어지는 오산 문인의 맥을 이루기도 하였다.

 

 

 * 3·1운동의 민족 대표로 독립을 선언한 남강의 뜻에 부응한 1,200여 명의 학생들은 3월 2일 학교에서부터 행렬을 이뤄 고읍역까지 진출하는 등 격렬한 독립만세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에 놀라 급파되어 온 정주 경찰과 평양 수비대의 호위 아래 일제 헌병들은 독립운동의 근거지라 하여 오산학교에 불을 지르는 만행을 저질렀다. 학교는 잿더미로 변하고. 교장 조만식을 비롯한 많은 학교 관계자와 학생들이 구속되는 등 혹심한 수난이 뒤따랐다. 이 폐허 속에서 감옥에 갇힌 남강을 대신하여 약관 23세의 노호 김기홍(蘆湖金料鴻)은 학교의 주춧돌을 다시 놓았다. 그는 당시7,000원의 거금을 쾌척하여 오산학교를 재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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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산학교 출신인(25회) 화가 이중섭의 작품

 

 

* 오산학교는 춘원 이광수가 지은 교가처럼 수많은 민족의 일꾼을 길러냈다.“네 손이 솔갑고 힘도 크구나/ 불길도 만지고 돌도 주물러/ 새로운 누리를 짓고 말련다/ 네가 참 다섯 메의 아이로구나.”

 


주소: 서울시 용산구 보광동 168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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