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 꿈의교회

조회 수 5488 추천 수 0 2012.10.09 10:51:21

◇ 공주 꿈의교회 ◇



*  꿈의교회(구 공주침례교회)는 한국 침례교회사 가운데 가장 먼저 창립된 교회중의 하나이다. 공주침례교회는 미국 엘라 씽 선교회 소속 선교사들인 파울링 목사 일행에 의해 창립되었다. 엘라 씽 선교회는 1895년 미국 보스턴 클라렌돈 침례교회 고든 목사의 선교적 열정과 이 교회의 헌신적이며 성공적인 사업가인 씽(S. B. Thing) 집사가 자신의 외동딸 엘라 씽(Ella Thing)이 죽음을 앞두고 자신에게 상속될 재산이 복음을 위해 쓰여지길 소원했던 것을 기념하여 설립한 선교단체였다. 1895년 엘라씽 선교회에서 훈련받은 첫 번째 선교사로 파울링 목사 부부와 여선교사 아만다 가데린 세 사람이 한국으로 파송된다.

  이들은 부산에 머물면서 얼마간 선교 활동을 하다가 서울로 이동하여 선교를 시작하였다. 하지만 이들보다 먼저 한국 서울에서 선교 사역을 하던 타 교단 선교사들에게 밀려 충청도로 이동하게 된다. 파울링 목사 일행은 지역을 이동하며 전도활동을 하다가 1896년 6월경 충청도청 소재지였던 공주에서 선교사역을 했는데 이것이 ‘꿈의교회’의 시초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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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주침례교회는 엘라 씽 선교회에서 2차로 파송한 스테드맨 선교사와 부인 그리고 엑클스와 엘머가 담당하게 된다. 스테드맨은 1896년 4월 4일 한국에 도착하여 정동에 머물며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었다. 1897년 9월 29일에는 브라이든과 결혼하고 즉시 공주로 이동하여 본격적인 사역을 시작하였다. 공주에 도착한 스테드맨 선교사는 공주를 거점으로 강경을 비롯한 중부권에 선교의 지경을 넓혀나가게 된다. 이 때부터 공주침례교회는 교회로서의 틀을 갖추고 한국 침례교 선교의 중추적인 역할을 감당하는 한국 침례교회의 어머니 교회의 역할을 감당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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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펜윅 선교사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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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펜윅의 한복 입은 모습

* 초기 선교사들의 사역은 한국의 보수적인 유교사상과 부딪혀 어려움을 겪게 된다. 또한 이들을 지원했던 엘라씽 선교회가 1901년 한국에서 일본으로 선교 방향을 전환함에 따라 스테드맨 선교사 일행은 본국으로 귀환하면서 그 동안 구축했던 모든 교회와 재산을 캐나다 출신 선교사인 펜윅에게 이양한다. 펜윅은 1889년 12월 8일 독립적으로 한국에 들어와 원산에서 선교사역을 하고 있었다.

  신학교육을 받지 않았던 펜윅 선교사는 당시 강력한 영적체험과 열정으로 복음을 전하고 있었다. 그러던 펜윅은 1893년 본국으로 돌아가 ‘한국순회선교회’를 조직하고 후원자를 모집하던 중, 엘라씽 선교회 창립 주요 멤버였던 고든 목사와 연결이 되어 침례교인이 된다. 

* 스테드맨의 본국 귀환이 결정되자 1901년 엘라씽 선교회를 인수하여 한국 순회선교회와 병합하고 ‘신명균’을 공주로 파송하여 공주침례교회를 돌보게 한다. 뿐만 아니라 펜윅은 1903년 2월 10일 공주 반죽동에 교사를 신축하고 성경학원을 설립하여 신명균을 원장으로 임명했다. 이종덕, 장석천, 황태봉, 고문중 등이 첫 입학생이 되었고 그 후 10년간 많은 목회자들을 양성하였다. 당시 공주에 세워졌던 성경학원은 오늘날 침례교신학대학교의 전신이 되었다. 그 후 펜윅 선교사는 1906년 ‘대한기독교회’라는 독립된 교단을 창설하였고 이것은 지금의 ‘기독교한국침례교회’ 모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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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펜윅의 장례식

* 펜윅 선교사로 인하여 한국과 만주 일대에 교세가 점점 확장해 가고 있었으나 교단의 총지휘자며 큰 힘이 되었던 펜윅 선교사는 활발한 선교 활동을 하시다가 1935년 원산에서 소천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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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펜윅과 신명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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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균 목사

 

* 선교 초기 서울과 공주를 오가며 사역을 하던 스태드맨 선굣는 1899년 만민공동회 주동 인물로 체포령이 떨어진 독립협회의 회원 ‘오긍선’씨를 서울 선교사의 집에 숨겨주게 된다. 이후 스테드맨의 한글교사가 되어 지내던 오긍선은 스테드맨과 함께 선교사로 위장하여 자신의 고향이기도 했던 공주로 함께 내려가 사역을 돕게 한다. 이후 독립협회 관련인물들이 석방되고 사건이 수습되자 1900년 봄 그의 고향인 공주(사곡면) 금강 나루터에서 침례를 받게 된다. 이로써 오긍선은 꿈의 교회 최초의 침례교인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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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죽동 ㄱ 초가집 교회

* 초기 한국 침례교회사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감당하던 꿈의 교회는 1917년 총독부 폐교령으로 교회가 폐교되는 치명적인 아픔을 겪게 된다. 이후 1919년 대한 기독교회로 다시 교회가 운영되었다. 일본 정부는 ‘대한’이라는 용어를 삭제하라는 강요를 하였다. 따라서 1921년 동아기독교로 개명되었지만 1940년부터 1945년까지 일제의 박해로 교회가 다시 폐교되었다. 꿈의 교회는 일제치하의 암울한 시기에 교회 생존을 위해 처절하게 투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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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4년 대부흥회

(산성동 옛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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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7년 여름성경학교

 

 

* 1945년 8월 일제로부터 해방된 이후 1951년 20대 장일수 목사가 산성동 127번지 43칸의 일본식 가옥을 백미 20가마에 구입하여 1966년까지 교회당으로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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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성동 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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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성동 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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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9년 7월 제 28대 담임목사로 안희묵 목사가 담임목사로 취임하게 된다. 2002년 1월에는 웅진동에 3,476평의 대지를 구입한 후 2003년 7월 7일 연 1,800평의 성전을 신축하여 입당하였고 교회 이름을 ‘꿈의 교회’로 개명하였다.

 


* 주소: 충남 공주시 웅진동 242-1

* 전화: 041) 855-4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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