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익 목사와 대전신학대

조회 수 6609 추천 수 0 2012.10.09 10:59:45

◇ 이자익 목사와 대전신학대  ◇



* 이자익은 1879년 7월 25일 경남 남해군 이동면 탑정리 섬마을의 장수(長水) 이씨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부모를 여의고 의지할 곳 없던 그는 김제로 가서 그곳의 거부였던 조덕삼의 마부가 되었고 성실하여 주인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청년기에 접어든 이자익은 장사에 손을 대어 안정된 생활기반을 마련하였다.

  1904년 이자익은 조덕삼과 함께 최의덕(Lewis Boyd Tate) 선교사를 만나 기독교로 개종하였으며 조덕삼의 집에서 예배를 시작하여 두정리교회(금산교회 전신)가 태동하였다. 같은 해 이자익은 최의덕 선교사의 주례로 김선경과 결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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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덕삼과 이자익에게 전도한 테이트 선교사(Lewis Boyd Tate) - 한국명 최의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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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06년 세례를 받고 교회의 영수(領首)로 임명되었다. 1908년 두정리(금산)교회 초대 장로로 장립 받았고 같은 해 조덕삼 장로의 적극적인 후원으로 평양장로회신학교에 입학하여 1915년 졸업 후(8회) 동년 8월 전라노회에서 목사안수를 받았으며 최의덕 선교사의 동사목사(제2대)로 금산교회에 부임하였다. 1919-1920년 제 5-6회 전북노회장을 역임하였으며 1924년 대한예수교장로회 제13회 총회 총회장으로 당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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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덕삼 장로                     * 조덕삼 장로 손자 조세형 장로와 금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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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로회신학교에서 이자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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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6년 평양장로회신학교 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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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동자동에 있던 조선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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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산 조선신궁터에 있던

대한예수교장로회신학교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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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장로회신학교 제8회 졸업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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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평교회에서 결혼 주례 - 이자익목사

 

 * 이자익은 1954년 8월 25일 마침내 대전신학교를 설립하고 초대교장을 역임하므로 대전신학교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그는 1958년 3월 대전에서 김제군 원평에 있는 아들 집으로 이거한 후 동년 10우러 9일(79세)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위대한 삶을 마감하였다. 그의 장례는 원평에서 10월 9일 대전노회장으로 엄수되었다.

 

•분열 이전의 장로교단 총회장을 세 번이나(13, 33, 34대) 역임하신 전무후무한 교단의 최고 어른입니다.

•충청도(대전노회), 전라도(전북노회), 경상도(경남노회)를 망라한 전국에 걸쳐서 노회장을 여러 번 지내시며 약 20개의 교회를 설립하시고 목회하신 역사상 유례가 없는 최고의 목회자입니다.

•70이 넘은 노령에도 불구하고 한 지역(대전)에서 신학교를 세우고 노회를 신설하고 교회를 만드시어 초대교장, 초대노회장, 초대당회장을 역임하신 유일무이한 인물입니다.

•가난과 고아와 마부라는 밑바닥 인생에서부터 시작하여 목사로서의 최고의 영예와 영광의 자리에까지 올랐던 입지전적인 인생역전 드라마의 주인공입니다.

•마부 출신이 그 집 주인(조덕삼)과 함께 교회를 설립하여 섬기다가 주인보다 먼저 장로로 피택 받고도 두 사람이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해주며 역사상 최고의 감동을 남겼던 실화의 주인공입니다.

•먼저 장로가 된 자기 집 마부 출신의 사람됨을 알아보고 평양까지 보내 신학공부를 시켜 목사로 만든 한국교회의 가장 훌륭한 인격자이신 조덕삼 장로를 만난 최고의 행운아입니다.

•시골교회 처녀목회시절 큰 교회의 청빙을 거절하고 작고 연약한 시골교회를 지켰던 위대한 농촌목회자입니다.

•입각(入閣)을 권유하는 부통령의 제의를 단호히 거절하며 장관보다는 목회자로 종신 할 것을 선언했던 투철한 소명의식을 가진 최고의 목사입니다.

•일제의 신사참배에 전혀 가담하지 않고 창씨개명에도 불참하며 고난을 감수하였으나 본인의 신사참배 거부사실을 전혀 자랑하지 않았으며 신사참배 가담자들을 정죄하지도 않았던 한국교회의 역사상 가장 숭고한 정신을 남긴 스승입니다.

•정치적 흥정에 전혀 흔들림이 없고 교회헌법에 정통하고 회의 규칙에 완벽한 지식을 갖추었던 전설적인 사회자(Moderator)로서 한국교회에 법치주의 정신을 심어주었던 최고의 법통(法通), 깨끗한 교회정치인의 표상입니다.

•명예나 권력, 일신상의 유익을 위한 신앙의 변질이 전혀 없었던 한국교회가 낳은 제일의 거목 (巨木)입니다.      

               - 글쓴이: 문성모(대전신학대 전 총장) / 2005년 4월 19일 이자익목사 기념행사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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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신학대학교는 1954년 하나님의 뜻 가운데 개교하여, 그 동안 3000여명에 달하는 주님의 종들을 배출해 낸 중부권 유일의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총회 직영 신학대학교이다. 흔들림 없는 개혁신학의 학풍으로 한국교회를 섬기며 민족을 품에 안고 세계를 향하여 복음을 전하는 살아있는 신학을 표방하는 신학대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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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신학대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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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자익 기념관

 * 이자익 목사를 초대교장으로 모시고 있음은 대전신학대학교의 최고의 자랑이다.

 



* 주소: 대전광역시 대덕구 오정동 22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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