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성교회

조회 수 5969 추천 수 0 2010.03.10 19:44:06

◇ 금성교회 ◇

    




  1907년 3월 10일 조봉호, 조운길, 이덕련 등 8인의 구도자가 자생적 가정교회로 양석봉의 집(금성리 534번지)에서 첫 예배를 드림으로 이것이 금성교회의 첫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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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봉호

 

 조봉호는 부유한 농가의 아들로 태어나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경신중학교 유학하여 이때 복음을 받아들이고 숭실대학교에서 수학하였다. 예수를 믿는 다는 이유로 고향 귀덕에서 쫓겨나 금성리에서 살게 된다. 그곳에서 복음을 전하다 8명의 성도와 함께 예배를 드린다. 그리고 제주도에 입도한 이기풍 목사를 도와 조사(지금의 전도사)로 동역하였다.

 

* 조봉호는 상해 임시정부의 독립자금 모금에 앞장서 1만원을 모금, 송금하다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모든 책임을 혼자 뒤집어쓰고 모진 고문 속에서 1920년 4월 28일 대구 형무소에서 순국하였다. 그이 나이 38세였다. 정부에서는 조봉호의 공적을 인정하여 1963년 3월 1일 건국공로 대통령 표창을 추서한다.

 

 * 이도종 목사(1892.9.13 - 1948.6.19)

   이도종 목사는 금성교회 이덕련 장로의 아들이다. 금성교회 초대 성도이며, 제주도 제 1호 목사이자 제주도 제 1호 순교자이다. 이도종 목사는 복음전도 중 4.3 사건 때 폭도들에 의하여 피살 순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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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석봉(1890-1931)

   제주 금성교회 시작 예배를 드린 장소를 제공하신 분.

   (이 때 나이 17세 - 결혼함)

   1919년 독립만세 사건과 조봉호 조사 군자금 모금 사건으로 인해

   1920년 일본으로 건너가 일하다가 병을 얻어 귀국 후 41세의 일기     로 소천하심.

   * 오래전 예배시간을 알리며 사용했던 종

 

  지금은 낡아버려 울리진 않지 종이지만, 이 종은  메마른 심령들에게 복음의 종소리 메아리쳐 속히 돌아와 구원받기를 원하는 무언의 소망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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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성교회 구교회 사진(1970년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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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성교회의 첫 번째(1907년) 예배처소는 양석복의 집(금성리 534번지)였으며, 두 번째(1912년) 예배처소는 조봉호씨 생가(귀덕리 중동 1292번지)였다. 세 번째(1915년) 예배처소는 이덕련 씨의 집(귀덕리 상동 690번지)였으며, 네 번째(1923년) 예배처소는 금성리 591번지에 초가집을 짓고 예배당으로 사용하였다. 1930년 초가집 지붕을 함석으로 개량하였으며, 1970년 그 자리에 벽돌로 예배당을 건축한다. (위 사진들 속의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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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6년 신축된 예배당(금성리 436-3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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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기풍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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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창국 목사

 - 2007년 3월 11일 금성교회 창립 100주년 감사예배를 드리다.

 - 금성교회를 섬겼던 목회자로는 이기풍 목사, 김창국 목사, 이도종 목사 등이 있다.  

      


* 주소: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금성리 436-3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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