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제일교회

조회 수 8043 추천 수 0 2010.03.09 23:02:18

◇ 대구제일교회 ◇


  베어드 선교사(Rev. William M. Baird = 배위량)는 1891년 부인과 함께 부산에 도착하여 우리말 공부와 선교 활동을 시작하였다. 1893년 4월 17일 경북 내륙지방의 전도 순회차 부산을 출발하여 동래, 물금, 밀양을 지나 청도읍 화양으로 팔조령을 넘어 22일 대구의 약전 골목에서 많은 전도지를 나누어 주었는데 이 시기를 대구제일교회의 창립일(1893년 4월 22일)로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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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제일교회의 첫 번째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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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제일교회 구내에 있던 애덤스 목사의 사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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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95년 선교 초기 우리말을 배우기 위하여 부산의 한 한문 서당에서 공부하며 선교 훈련을 쌓았다. 사진의 뒷줄 왼쪽 끝은 베어드 목사, 그 앞에 갓쓴 이가 서상륜 전도사이고, 그 앞에 배 목사의 부인, 오른쪽 뒷줄부터 대구제일교회 설립자인 애덤스 목사, 바로 그 앞이 고윤하 전도자이다.

 

* 교회 이름은 남문안교회, 대구읍교회, 남성정교회 등으로 불리었다. 1933년 10월 8일 헌당 예배를 드리며 이름도 남성정교회에서 대구제일교회로 개명하였다. 1933년 헌당한 이 예배당은 1991년 문화재로 지정 받아 보존되고 있다. 이 자리는 1893년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가 대구 경북지역 최초의 기독교 교회인 남성정교회를 세운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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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07년 교세 확장에 따라 전통과 서양 건축 양식을 절충한 단층 교회당을 새로 지었다. 1908년 함석지붕으로 된 140평의 두 번째 교회가 건축되었다.

 * 그 뒤 1933년 신도들의 헌금과 지방교회의 성금으로 벽돌로 교회당을 짓고 제일교회로 이름을 고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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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06년 10월 15일 애덤스 목사에 의해 우리 교회 구내에서 계성중학교가 설립인가 되고 1907년 개교하여 첫 입학생을 맞았다.(교장 애덤스 목사, 교사 이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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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마태에 의해 설립된 초창기의 신명여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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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루언 목사의 부인인 부마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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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접 가정을 방문하여 전도하는 현해련 전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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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제일교회 당회록 내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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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 최초의 서양식 결혼 예식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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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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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태준이 작곡한 찬송가

“나 이제 주님의 새 생명 얻은 몸”

 

* 박태준(1900-1986)은 1900년 대구 남성정 157번지에서 박순조 장로의 차남(장남은 박태원)으로 태어났다. 대남소학교, 계성중학교, 평양 숭실전문학교에서 공부했으며, 모교인 대구 계성학교 음악교사로 합창과 악대부를 지도했고, 동요 “물새 발자국” “오빠 생각”등을 작곡했다. 박태준은 가곡 등 150여곡을 작곡했으며 그가 작곡한 찬송가 493장(나 이제 주님의 새 생명 얻은 몸)은 지금도 많이 불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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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7년 5층 높이의 벽돌로 종탑을 세워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건물은 서양의 중세사회에 속하는 13-15세기 때 유럽에서의 널리 유행한 고딕건축양식의 특성을 잘 나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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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어드 목사의 선교사역을 시작으로 출발한 대구 선교 기지는 베어드 목사가 서울 지역 교육 담당 고문으로 발령이 나면서 그의 손아래 처남인 애덤스 목사1)(Rev. James E. Adams = 안드와)에게 인계되었다.

 대구제일교회의 1대 목사로 애덤스는 1895년 5월 29일 부산에 도착하여 우리말 공부를 하고, 선교 경험을 한 뒤 1897년 11월 1일에 부인 넬리 딕2)(Nellie Dick), 어학선생 김재수와 함께 대구에 도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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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99년 12월에는 의사 죤슨에 의하여 본 교회 구내에서 현 동산의료원의 전신인 ‘제중원’이 개설되어 경북 지방 최초로 서양 의술이 소개되었다.

 

  1918년 부임한 제 5대 이만집 목사는 1919년 3.1 독립 만세 운동을 대구에서 주도적으로 이끌던 분으로 옥고를 당했고, 그로 인해 이후 교계와 대구지역에서 존경을 받으며 이는 또한 교회 성장의 중요 요인이 되기도 하였다.

 

  교회 창립 100년 사이에 본교회가 분립 또는 개척한 교회는 1900년 경사사월교회를 시작으로 1910년 사이에 6개 교회를, 1916년 사이에 4개 교회를, 그리고 일제의 종교탄압정치 하의 25년 사이에는 겨우 4개 교회만을 분립하다가 조국 해방과 더불어 1948년부터 1983년 사이에 10개 교회를 분립 및 개척하였다.

 

1917년 7월 최초로 남녀 혼성 성가대를 조직한 것은 특기할 만하다. 당시의 지휘는 박태원, 반주는 박태준, 대원으로 현제명3), 김병욱 등 14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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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대구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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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 주소: 대구광역시 중구 동산동 234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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